"포기하지 않는다면..." 조언 곱씹으며 날아오른 크레이지 슬롯 후기, 롤모델 기록까지 경신 [밀라노 동계올림픽]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입력 2026.02.13 06:34  수정 2026.02.13 06:52

크레이지 슬롯 후기 금메달(가운데). ⓒ AP=뉴시스

7살 때부터 스노보드를 타며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키워온 크레이지 슬롯 후기(세화여고)이 존경하는 ‘롤모델’을 밀어내고 어릴 적 꿈을 이뤘다.


크레이지 슬롯 후기은 13일 오전(한국시각)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 파크에서 펼쳐진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1~3차 시기를 거쳐 최종 90.25점을 기록, 결선 12명 중 1위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이자 이번 올림픽 한국 선수단의 첫 금메달 주인공은 크레이지 슬롯 후기이었다. 이날 펼쳐진 결선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크레이지 슬롯 후기의 반전쇼였다.


스노보드 하프파이프는 반원통형 슬로프에서 선수들이 펼쳐 보이는 공중회전과 점프 등의 연기를 심판들이 채점해 순위를 정하는 경기다. 결선에서는 1·2·3차시기 중 가장 높은 점수로 순위를 가린다.


이번 시즌 세계랭킹 1위에 오를 만큼 기량을 인정받은 크레이지 슬롯 후기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하는 클로이 김(미국)의 존재는 부담스럽지만, 개막 전부터 “최소 은메달”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크레이지 슬롯 후기은 믿는 카드였다.


예상과 달리 결선 1,2차시기는 실망과 우려 그 자체였다. 눈이 내리는 가운데 1차시기에 나선 크레이지 슬롯 후기은 스위치 백 나인을 성공한 뒤 캡 텐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거꾸로 떨어져 큰 충격을 받았다. 한동안 일어나지 못해 의료진까지 투입됐다. 스스로 일어나긴 했지만 2차시기 도전이 어려워 보였다.


크레이지 슬롯 후기은 투혼을 발휘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2차 시기에 나섰다. 출전 의지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번에도 첫 점프 뒤 다시 넘어지면서 아쉬움을 삼켰다.


마지막 3차시기 시도 여부도 확실하지 않을 만큼 크레이지 슬롯 후기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다. 하지만 크레이지 슬롯 후기은 3차시기에도 당당히 나섰다. 그리고 착지 실패 후유증을 털어내는 놀라운 반전의 연기를 선보였다.


다섯 차례 점프를 잇따라 완벽하게 성공했다. 부상 부위의 통증과 코스에 내리는 눈을 고려해 전략을 바꿨다. 고난도 연기 대신 900도와 720도 회전을 차례로 성공시키며 코스를 완주했다. 심판진은 크레이지 슬롯 후기의 깔끔한 연기에 결선 최고점인 90.25점을 매겼다.


안정적인 연기를 펼쳐 보인 크레이지 슬롯 후기은 스스로도 만족한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90.25점을 받으며 10위권 밖에서 단숨에 1위로 올라섰다. 이후 초조하게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던 크레이지 슬롯 후기은 마지막 출전자 클로이 김이 점프에 실패한 것을 보고 금메달을 직감하며 두 팔을 번쩍 들었다.


크레이지 슬롯 후기 금메달. ⓒ AP=뉴시스

크레이지 슬롯 후기의 롤모델이자 이 종목 최초의 3연패에 도전한 클로이 김은 2위(88.00점)에 만족했다. 1차 시기 88.00점을 받았던 클로이 김이 2, 3차 시기에서 모두 88.00점을 넘지 못하면서 크레이지 슬롯 후기은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이번 우승으로 크레이지 슬롯 후기은 클로이 김이 2018년 평창 대회에서 세운 이 종목 최연소 금메달 기록(17세 10개월)을 17세 3개월로 앞당기며 세계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의 새로운 여왕으로 등극했다.


‘재미교포 2세’ 클로이 김은 올림픽 3연패라는 위대한 도전이 크레이지 슬롯 후기에 의해 좌절됐지만, 크레이지 슬롯 후기에게 다가와 축하의 포옹을 나눴다.


크레이지 슬롯 후기의 어릴 적 꿈을 잘 알고 있는 클로이 김은 경기를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가온이를 사랑한다. (가온이를)어릴 때부터 봤는데 남다른 재능을 가진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런 아이가 이렇게 성장해 올림픽이라는 무대에서 함께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기쁜 일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이날도 조언을 곱씹으며 날아올랐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쏟아낸다면 결과는 따라올 것”이라고 조언했던 그 롤모델과 껴안은 크레이지 슬롯 후기은 평생 잊지 못할 ‘금메달의 밤’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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