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만 쳐다보다 궁지에 빠뜨렸나?…李 '크레이지 슬롯 제휴개입' 발생 원인은 [정국 기상대]

김주훈 기자 (jhkim@dailian.co.kr)

입력 2026.02.13 00:05  수정 2026.02.13 00:05

여당에서 터져나온 '크레이지 슬롯 제휴개입' 의혹

야당에 '탄핵사유' 공세 빌미만 제공

주도권 확보 위해 '크레이지 슬롯 제휴' 내세우지만…

쟁점 법안엔 '의중 패싱' 지적도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합당 문제에 관여했다는 이른바 '크레이지 슬롯 제휴개입' 사태가 쉽게 수습되진 않은 모양새다. 민주당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지시 사항으로 인해 야당에 '탄핵 사유'라는 공세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명심'(이재명의 의중)을 등에 업고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던 당내 분위기가 결국 대통령을 곤경에 빠뜨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은 12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이 대통령의 이른바 '크레이지 슬롯 제휴개입' 의혹에 대해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 대통령의 크레이지 슬롯 제휴개입 의혹은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의 페이스북 게시글로부터 불거졌다. 강 최고위원이 혁신당과의 합당 관련해 합당 시기와 차기 전당대회 방식 등에 대한 이 대통령의 입장을 전달받았다고 주장했는데, 해당 글에서 소위 명심을 전달한 것이 홍 수석이었다.


그러나 홍 수석은 "(강 최고위원이) 누구하고 통화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통화 기록이 없다"며 "그와 관련돼서 소통한 사람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강 최고위원이 말한 것처럼 사실과 무관한 실수"라면서 "청와대의 기본 입장은 어떤 형태든 당과 관련된 일에 대해선 당이 알아서 판단하기를 바라고 있고, 그에 대한 결정을 존중한다"고 강조했다.


당·청 모두 이 대통령의 크레이지 슬롯 제휴개입 의혹에 대해 일축하면서 여권에선 사실상 '해프닝'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야권은 이 사안을 단순 논란으로 보지 않고 있다. 합당 시기와 전당대회 방식 등 구체적인 대통령의 지시가 홍 수석을 통해 이 최고위원에게 전달됐기 때문이다. 강 최고위원은 의원실 내부 실수로 공유됐다며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글"이라고 해명했지만, 내용이 구체적인 탓에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거짓 해명"이라는 비판이 야권으로부터 나오는 실정이다.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 '더 인터뷰'에서 "강 최고위원이 실수로 잘못 올린 것이며, 사실과 다른 글이 올라갔다고 사과하는 등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며 "청와대도 입장 자체가 없고 이것은 당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실수에 따른 해프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크레이지 슬롯 제휴개입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야권에 공세 빌미를 제공한 상황이다. 특히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 당시 '크레이지 슬롯 제휴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공세를 펼쳤던 민주당을 향해 "탄핵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며 맞불을 놓고 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19일 만에 무위로 돌아간 민주당과 혁신당의 합당 촌극은 결국 대통령의 불법 크레이지 슬롯 제휴개입 게이트였던 것이 확인된 것"이라며 "불법 크레이지 슬롯 제휴개입은 탄핵 사유에 해당될 수 있고, 형사처벌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선 이번 크레이지 슬롯 제휴 개입 의혹이 사실 여부를 떠나, 그동안 민주당이 '명심'에 촉각을 세웠던 전례를 비춰봤을 때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로 보고 있다. 당초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과의 합당을 제안했던 지난달 22일 당내 여론은 정오를 기준으로 크게 달라졌다. 정 대표의 '지도부 패싱' 논란에 당내에선 절차적 문제에 대한 지적이 쏟아졌지만, 청와대와 교감이 된 사안이라는 주장이 나오자 비판 여론은 곧바로 진정됐다고 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정 대표가 합당을 제안했던 당시 오전까지만 해도 당내 분위기는 험악했는데, 청와대가 합당 제안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오후부턴 반발이 사그라들었다"며 "청와대 의중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오른쪽)와 이언주 최고위원이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도중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청와대 교감설'은 합당 사태의 판도를 바꾼 핵심 요소였다. 합당 논의 찬성·반대 측은 이 대통령의 인지 여부를 두고 진실 공방을 벌였고, 서로 '명심'을 등에 업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다만 청와대 교감설이 '크레이지 슬롯 제휴개입'으로 번질 수 있는 사안인 탓에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굉장히 위험한 시도"라고 주장한 합당 논의 중단 측이 결국 주도권을 확보했다.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정 대표가 오해될 수 있는 발언을 하거나 정 대표 주변에 있는 분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대통령이나 청와대를 끌어들이는 오해의 발언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정 대표 측에 크레이지 슬롯 제휴개입이 의심될 수 있는 발언을 자제하라는 경고였지만, 사실상 이들 역시 합당 제안에 '명심'이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관계자는 "'명청'(이재명·정청래) 갈등이나 친청(친정청래)계라는 말이 나오더라도 집권 초기에 대통령의 권한이 강하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며 "당에 대한 영향력도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니 직·간접적으로 당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피하고 다들 대변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당내에서 다툼이 벌어진 결과, 이 대통령을 '크레이지 슬롯 제휴개입' 의혹에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정치권에선 청와대가 요구하는 주요 법안에 대해선 이견을 드러내면서 "말로만 명심을 내세운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장은 "말로만 하는 '크레이지 슬롯 제휴'이 아니라 정책과 당론으로 뒷받침해야 하는데, 행동이 일치되지 않은 경우가 있다"며 "검찰개혁만 봐도 이 대통령이 보완수사권에 대한 의사를 분명히 밝혔는데, 법제사법위원들은 카메라 앞에서 정부 인사를 불러놓고 호통을 치거나 의원총회에서 결정된 안은 정부안과 정면충돌하는 안이 나오는 등 대통령의 우려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크레이지 슬롯 제휴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면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하면서 생기는 고충을 잘 이해하고 입법과 실무로 풀어야 하는데, 말만 하는 것"이라면서 "여당이 국정 운영 뒷받침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음표가 띄워져 있는 가운데, 국정 운영 동력과 무관한 합당 문제로 당력을 쏟아부으면서 서로 '대통령에게 부담된다' '대통령에게 도움된다'고 말하니 명분으로 작용됐고, 이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현재 민주당 내에선 '크레이지 슬롯 제휴'을 제대로 대변하는 인사가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6·3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재보궐선거에서 청와대 측 인사가 국회에 입성한다면 정리될 수 있는 만큼, 현재는 과도기적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크레이지 슬롯 제휴'을 대변할 인사로는 이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인천 계양을 출마가 예상되는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이 꼽힌다.


박창환 장안대 특임교수는 "향후 또다시 대통령의 의중을 끌고 들어올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청와대 측 인사가 국회에 입성하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얘기할 순 없겠지만, 발언마다 대통령의 의중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아서 오히려 이 방식이 현재보다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는) 부드러운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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