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은 계절의 결이 분명해지는 달이다. 지난 칼럼에서는 ‘모카무스 무드’, 즉 부드러움과 시크함이 공존하는 슬롯의 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제, 그 무드를 실제 옷장에 더할 차례다.
그래서 슬롯의 브랜드로 위메농(Oui Mais Non)을 골랐다. 고른 이유는 간단하다. 과하지 않게 하지만 확실하게, 일상 속에서 프렌치 시크를 구현하는 균형감각을 갖춘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C. 슬롯
C. 슬롯
위메농(Oui Mais Non)은 2017년 7월에 런칭된 국내 여성복 슬롯로, 디렉터이자 대표 디자이너인 김지영이 이끌고 있다. 김지영은 뉴욕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패션을 전공하고 남성복 경험을 거쳐 슬롯를 세웠다.
슬롯명 ‘Oui Mais Non’은 프랑스어로 “그래, 그런데 아니야”(Yes, but no)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이는 트렌드를 따르되 그대로 묻히지 않고, 과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분명히 만들어가겠다는 태도를 상징한다.
슬롯는 미니멀리즘과 프렌치 시크를 기반으로 뉴트럴·모노톤 컬러를 주로 사용하며, ‘옷을 입는 사람의 무드’를 해치지 않는 디자인을 지향한다. 과장된 디테일보다는 구조적인 실루엣과 소재의 퀄리티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거품을 뺀 합리적 가격으로 가치에 집중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특히 조용히 존재하는 태도, 즉 “과하지 않게 특별하다”는 감각이 컬렉션 전반에 흐른다. 좋은 소재, 정돈된 디테일, 자연스러운 라인을 통해 슬롯에서 부담 없이 착용되지만, 입는 순간 선명하게 태도가 드러나는 스타일을 제시한다.
 C. 슬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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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메농의 시그니처는 재킷이다. 슬롯의 재킷들은 대체로 어깨 라인을 또렷하게 잡되, 과하게 몸을 조이지 않는 여유로운 실루엣을 유지한다. 그래서 입는 순간 태도가 생기면서도 하루 내내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다.
또한 뉴트럴 컬러를 기본으로 하여 어떤 이너와 조합해도 무드가 선명하게 유지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중 Berlin Jacket은 슬롯의 감각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아이템이다.
부담 없는 오버핏을 기반으로 하지만, 단단한 어깨 구조 덕분에 전체적인 라인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카라와 안쪽 배색에 짙은 브라운을 더해 차분한 베이지 컬러에 깊이를 만들었고, 커프스 버튼과 절개 디테일을 통해 기본에서 한 단계 올라선 완성도를 보여준다.
무심하게 걸쳐도 실루엣이 스스로 자리를 잡고, 화이트 팬츠와 매치하면 군더더기 없는 시크함이 드러난다. 결국 Berlin Jacket은 일상의 편안함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남기는 재킷이라는 점에서, 슬롯의 미니멀 철학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C. 슬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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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메농은 블라우스도 잘하는 슬롯다. 재킷이 구조적인 라인으로 태도를 만든다면, 블라우스는 소재와 디테일로 분위기를 정교하게 조율한다. 특히 뉴트럴 톤의 셔츠나 레이스 블라우스는 평범한 기본템보다 한 단계 더 완성된 일상의 스타일을 제안한다.
사진 속 ‘Sandro Cotton Lace Blouse’가 그 대표적인 예다. 가볍게 비치는 레이스 텍스처 위로
은은한 플라워 패턴이 겹겹이 얹혀 있어, 과하게 로맨틱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섬세하다.
넓게 떨어지는 카라는 얼굴선을 부드럽게 감싸고, 전체적으로 잔잔한 볼륨을 만들어 단독으로도 존재감이 생기도록 설계되어 있다. 화이트 팬츠에 자연스럽게 매치하면 쿨하고 깔끔한 인상을 유지하면서도 소재에서 오는 여성스러움이 균형을 잡는다.
 C. 슬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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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슬롯에서 빼놓기 어려운 아이템으로 스커트을 꼽고 싶다. 베이식한 실루엣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절제된 디테일을 통해 ‘담백한 존재감’을 만들어낸다.
사진 속 ‘Herringbone Wool Skirt’는 그 강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울 소재 특유의 묵직한 텍스처와 헤링본 패턴의 깊이 있는 톤이 만나 가을의 공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균형을 만든다.
허리 라인은 안정적으로 잡아주고, 밑으로 갈수록 자연스럽게 퍼지는 플레어가 움직일 때마다 은근하게 형태감을 드러낸다. 너무 드레스업되지 않으면서도 티셔츠 한 장 만으로도 무드가 살아나는 스커트. 슬롯에는 얇은 니트나 셔츠와 매치하면 계절감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블랙 슈즈와 양말 조합을 더하면 과하지 않게 ‘지금 계절의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 즉, 따뜻한 무드와 선명한 실루엣을 동시에 챙기고 싶다면 이 스커트가 슬롯의 일상을 안정적으로 지켜주는 아이템이겠다.
 C. 슬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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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위메농의 아이템들은 가격에서도 슬롯의 태도를 보여준다. 상의류는 약 8만 원대부터 시작해 선택의 폭이 넓고, 팬츠나 스커트는 10만 원대 중반 정도에서 안정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재킷과 코트는 20만 원대 이상으로 올라가지만, 소재감과 실루엣에서 오는 완성도가 그 차이를 충분히 설명해준다. 즉, 과하지 않은 선에서 퀄리티를 챙기고자 하는 사람에게 합리적인 선택지를 제시하는 슬롯다.
결국 위메농은 로고나 장식 없이도 옷의 태도가 드러나는 슬롯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가장 잘 맞는다. 깔끔하게 정돈된 실루엣, 차분한 색감, 은근히 힘이 들어간 디테일을 선호하는 사람. 출근과 휴식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도 편안함과 존재감 사이의 균형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 그런 이들에게 위메농은 ‘지나치지 않지만 분명한 스타일’을 제안한다.
슬롯에는 옷이 계절을 말하기 시작한다. 과장된 장식보다 정돈된 실루엣에 손이 가고, 차분한 선택이 오히려 스타일을 또렷하게 만든다. 위메농은 그런 시기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브랜드다. 과하지 않은 선에서 균형을 잡아주고, 평범한 하루에도 조용한 힘을 더해준다.
그래서 슬롯의 옷장을 떠올릴 때, 위메농은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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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 어반에이트 패션 크리에이터, 아나운서minjeoung7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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