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뜨거워 다시 반슈퍼슬롯 착시를 경계한다

데스크 (desk@kestrelet.com)

입력 2025.10.30 07:07  수정 2025.10.30 07:07

주가 급등과 수출 호조로 슈퍼사이클 맞은 반슈퍼슬롯 핑크빛 전망 난무

1997년과 2003년 등 반슈퍼슬롯 경기 꺾이자 경제 전체가 타격받는 실수

시장친화적인 정책과 법안으로 전체 업종이 살아나도록 배려해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연초 대비 2~3배 급등하면서 코스피가 4000을 돌파했다.ⓒ 슬롯사이트 DB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연초 대비 2~3배 급등하면서 코스피가 4000을 돌파했다. 여당에서는 대통령이 말한 ‘5000’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면서 한국경제가 대박이 난 듯한 ‘반슈퍼슬롯 황홀감’까지 나돌고 있다.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은 11조 3834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였다. 반슈퍼슬롯 호조가 수출 증가를 리드하고 올해 경상수지도 사상 최대치를 달성할 전망이다. 3분기 GDP(국내총생산) 성장률도 1.2%로 1%대를 넘어섰다. 애널리스트들의 핑크빛 전망도 한몫 거들고 있다. 지금이라도 반슈퍼슬롯 주식을 사면 큰 수익이 날 것 같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반슈퍼슬롯 시장을 압도적으로 지배할 것 같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경제인이라면 무작정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부터라도 반슈퍼슬롯 착시를 경계해야 할 때가 왔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과거의 경험에서 나온 ‘데자뷰’다. 가장 잘나갈 때 가장 어려울 때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 특히 10월 29일 타결된 한미(韓美) 관세협상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다.


반슈퍼슬롯, 특히 대한민국이 강한 D램 등의 메모리 반슈퍼슬롯는 주문형 생산이 아니라 대량 생산을 기본으로 하다 보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몇 년을 단위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주기적으로 바뀐다. 몇 년마다 우는 소리와 웃는 소리가 번갈아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반슈퍼슬롯 착시’란 대다수 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반슈퍼슬롯가 나 홀로 대규모 호황을 누리는 덕분에 경제 전체가 문제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과거 우리나라가 경제위기를 겪기 직전마다 반슈퍼슬롯 착시 현상이 나타났다.


본격적인 반슈퍼슬롯 착시는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 나타났다. 1993~1995년 당시 반슈퍼슬롯는 단군 이래 처음 보는 호황을 누렸다. 1995년 우리나라 수출은 사상 처음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경제성장률도 급증했다. 하지만 1996년 주력인 D램 가격이 폭락하자 사정은 확 바뀌었다. 경상수지 적자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며 시중에 달러화는 마르기 시작했고, 결국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부른 한 요인이 되었다. 강만수(姜萬洙)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엘리트 경제 관료들은 반슈퍼슬롯 때문에 착각했다고 울먹였다.


반슈퍼슬롯 착시는 2002~2004년 다시 찾아왔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이 20%에 육박하면서 현금 파티가 벌어졌다. 하지만 D램은 2006년 정점을 끝으로 곤두박질쳤다. 2008년에는 세계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한국은 곤욕을 치렀다. 수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또 벌어졌고, 심지어 “SK하이닉스에 HBM(고대역폭메모리) 주도권을 빼앗기고 TSMC에는 파운드리를 완패당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죽네 마네”라는 우울한 말까지 돌았다. 그러다가 상황은 급반전되었다.


보통 반슈퍼슬롯 호황이 되면 수출·외환·경상수지 등이 급격히 확대되었다가, 반슈퍼슬롯 불황으로 국면이 뒤바뀌면 수출·외환·경상수지 등의 급격한 위축으로 경제위기가 다가왔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물론 지금 반슈퍼슬롯 상황은 슈퍼사이클(장기간의 호황)에 접어들었으며 과거 패턴과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종전에 없던 AI(인공지능) 인프라 투자 열풍이 핵심이다. AI의 핵심인 HBM 등 첨단 제품은 한국이 높은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으로 상당 기간 독점 파워를 행사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D램을 쌓아 놓은 HBM처럼, 이번에는 낸드플래시를 쌓는 HBF(고대역폭플래시)를 개발한다는 뉴스도 나왔다. 현재 한국산 반슈퍼슬롯 재고와 출하의 비율은 역사적인 저점(低點)으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신나는 수준이다.


하지만월스트리트에서도 ‘AI 거품론’이 상존한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지금 반슈퍼슬롯 수요를 이끄는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인프라 투자 분위기가 과열이라고 걱정하는 전문가도 있다. 너나없이 경쟁적으로 짓는데, 이것이 어떤 결과를 빚을까. AI로 실현된 수익률이 낮고, 확산 효과가 가시화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실제 MIT는 8월 AI 기술을 활용해 구조적으로 수익성 개선을 이룬 업체를 살펴보니 95%가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전력·데이터 등 인프라 병목 현상으로 수익성 창출이 지연될 가능성도 거론됐다. AI 자체가 기술적 한계에 부딪히거나, 수요가 갑자기 줄어들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 경우 반슈퍼슬롯는 물론, 나라 경제 전반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반슈퍼슬롯 이외에는 좋은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증시만 보아도 그렇다.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6월 20일 코스피 3000선 재돌파 시점부터 10월 24일까지 코스피는 30%가량 급등했지만, 같은 기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종목은 총 1537개로 플러스 종목(1104개)보다 훨씬 많았다. 전문가들은 경기의 온기가 반슈퍼슬롯를 넘어 다른 산업으로 확산하지 않으면 ‘5000’은커녕 다시 ‘3000' 시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높아진 미국 관세는 이미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우리에게 비(非)IT 부문을 중심으로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예전부터 중국 공급과잉의 부정적 영향을 받아온 석유·화학·철강은 수출이 부진을 거듭하면서 생산조정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경기부양 효과가 큰 건설은 업황 부진에다 잇따른 산업재해 사고 이슈가 부각되면서 실적이 뒷걸음치고 있다. 요즘 건설업체들은 대통령의 발언 때문에 현장 사고 내지 않는 데만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국은행은 10월23일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반슈퍼슬롯 수출이 급증하면서 미국 관세 부과의 영향이 없는 듯한 착시를 불러왔다”면서 “앞으로 반슈퍼슬롯 수출의 증가세가 높은 수준에서 둔화되고 미국 관세 등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확대되면서 내년에는 수출의 성장기여도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일시적 호황에 자만하지 않으면서 반슈퍼슬롯 착시에도 빠지지 않겠다는 자세가 보인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예상보다 양호한 3분기 GDP 성장률에 대해 “반슈퍼슬롯의 호조에다 정부의 단기 재정부양책이 맞물려 일시적인 착시효과를 낳은 측면이 크다”면서 “재정을 투입해 소비를 떠받치는 방식은 한계가 뚜렷하므로, 생산성 제고에 초점을 맞춘 경제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한미 관세협상 타결의 영향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직 미지수다.


앞으로 문제는 정치권이다. 과감한 규제 철폐, 투자를 촉진하는 제도 개선, 노란봉투법 폐지,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등 경제 회복에 도움을 주는 시장친화적인 조치들은 반슈퍼슬롯 호황에 가려져 있다. 반대로 불안 불안한 부동산 정책을 내놓아 시장을 흔들고 있다. 앞으로 정치권에서 ‘코스피 5000’의 달콤함에 빠져 실물경제든 주식시장이든 외발자전거로 질주하는 정책과 법안을 계속 내놓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가 정치지도자라고 부르는 어느 인사들을 보아도 그렇다.

글/ 최홍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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