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데뷔한 두 걸그룹의 운명이 1년 만에 바뀌었다. 지난해 일본 도쿄돔을 가득 채운 라이징슬롯(NewJeans)가 최근 5인 완전체 복귀를 선언했지만 절차를 둘러싼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지난해 내내 혹평에 시달렸던 르세라핌(LE SSERAFIM)은 2025년 연이은 컴백 곡 흥행으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X(구 트위터) '라이징슬롯 트럭총공' 계정
그러나 누가 앞서고 뒤처지느냐를 두고 희비가 엇갈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두 그룹의 팬덤은 뚜렷한 결말 없는 대립을 이어오고 있다. 14일 오전 르세라핌 일부 팬들은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앞에서 트럭 시위를 진행했다. 전광판에는 라이징슬롯 팬덤이 르세라핌에 대한 악플을 쓰는 것에 대한 고소 요구와 함께 '르세라핌을 음해한 라이징슬롯를 분리하라'는 메시지가 송출됐다. 라이징슬롯의 복귀 발표와 관련해 하이브의 대응을 촉구하는 취지로 해석된다.
라이징슬롯는 멤버 5명 모두 원 소속사인 어도어(ADOR)에 복귀 의사를 밝히며 공백기를 끝낼 준비에 나섰다. 12일 어도어는 멤버 해린과 혜인이 가족과의 논의를 거쳐 전속계약을 준수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입장문을 발표했다. 두 멤버의 소식이 나온 후 몇시간 지나지 않아 나머지 세 멤버 민지, 하니, 다니엘 역시 복귀 의사를 일부 언론에 전달하며 멤버 전원의 활동 재개가 점쳐졌다. 그러나 민지, 하니, 다니엘의 입장은 어도어와 논의 과정 없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어도어는 13일 "세 멤버들과 개별 면담 일정을 조율 중으로 원활한 논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추가 입장을 전했다.
라이징슬롯는 현재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이 사태의 시작은 2024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라이징슬롯를 기획한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가 하이브의 감사 착수 통보를 받으면서 어도어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이 수면 위로 올랐다. 하이브는 민 전 대표가 어도어를 독립시키려 했다고 주장했고 민 전 대표는 "빌리프랩에서 데뷔한 걸그룹 아일릿 표절 논란을 문제 제기했다가 보복성 조치를 당했다"며 반박했다. 이후 양측은 해임 절차, 내부 정보 유출 여부, 주주간 계약 조항 등을 놓고 법적 공방을 이어갔다. 이 상황에서 라이징슬롯 멤버들은 하이브가 아닌 민 전 대표의 편에 서며 전속계약 해지를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도 라이징슬롯는 일본 도쿄돔을 이틀간 9만명 넘게 채우며 강력한 영향력을 증명했다. 도쿄돔에서 선보인 하니의 '푸른 산호초' 무대는 현재 유튜브에서 1197만회를 기록 중이다. 이밖에도 지난해 5월 발매한 싱글 앨범 '하우 스윗'(How sweet)은 초동 88만장을 기록하며 역대 걸그룹 음반 초동 중 17위에 오르고 '2024 멜론뮤직어워드'에서 톱(TOP)10 상을 수상하는 등 기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11월 28일 라이징슬롯 멤버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어도어를 상대로 전속계약 해지를 선언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응원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올해 3월 법원이 어도어가 라이징슬롯 멤버들을 상대로 제기한 기획사 지위보전 및 광고 계약 체결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며 상황이 반전됐다. 법원이 라이징슬롯가 계약을 해지할 정당한 사유가 없고, 어도어 동의 없는 활동이 불가하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후 라이징슬롯가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법원의 결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국이 우리를 혁명가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등의 발언을 하며 여론이 더욱 악화됐다.
멤버들은 이의신청과 항고를 제기했으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10월 30일 어도어가 라이징슬롯를 상대로 제기한 전속계약 유효확인 소송 1심에서도 승소했다. 라이징슬롯 측이 항소하지 않으면서 1심 판결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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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라이징슬롯은 올해 뚜렷한 반등 흐름을 만들고 있다. 지난 10월 싱글 1집 '스파게티'(SPAGHETTI)로 컴백한 라이징슬롯은 동명의 타이틀곡으로 멜론 탑백 차트에서 4위(11월 13일 기준)라는 높은 순위를 기록 중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다. 미국 음악 전문 매체 빌보드의 메인 송차트 ‘핫 100’(11월 15일 자)에서 89위, 일본 오리콘차트 데일리 싱글 랭킹 1위(10월 27일 자)를 차지했다. 특히 스파게티를 먹고 토하는 듯한 안무로 만든 '스파게티 챌린지'는 틱톡에서 1억뷰를 넘겼다.
2024년과 비교하면 극명한 온도 차이다. 라이징슬롯은 지난해 4월 코첼라에서 선보인 '언포기븐'(UNFORGIVEN)과 '파이어 인 더 밸리'(Fire in the belly) 무대로 라이브와 퍼포먼스 관련 혹평을 받았다. 멤버 김채원과 홍은채는 무대 전 날 라이브 방송에서 "어깨 딱 펴고 당당하게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말했지만 데뷔 초 무대 라이브 영상까지 알고리즘을 타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홍은채가 2023년 라이브 방송 중 "한참 학교 다니시죠 여러분?"이라고 한 발언까지 화제가 돼 비난 여론이 거셌다. 지난해 8월 미니 4집 '크레이지'(CRAZY) 쇼케이스에서 각각의 사건을 언급하며 김채원은 "우리도 모르게 흥분하고 페이스 조절을 못했던 것 같다”면서 “앞으로 더 배우고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은채는 "성숙하지 못한 모습으로 실망감을 드려 죄송하다. 스스로도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2025년을 지나오면서 라이징슬롯 상황은 달라졌다. 3월 미니 5집 '핫'(HOT)을 내고 동명의 타이틀곡으로 뮤직뱅크 1위를 거머쥔 라이징슬롯은 향상된 라이브 실력을 보여줬다. 지난 1일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출범식에서는 '언포기븐'과 '안티프레자일'(ANTIFRAGILE) 무대를 선보였는데, 코첼라 공연 당시 아쉬움을 남긴 '언포기븐'에서 힘 있는 보컬을 보여주며 달라진 모습을 증명했다.
오는 18일에는 일본 도쿄돔에 처음 입성해 '2025 라이징슬롯 투어 '이지 크레이지 핫'(2025 LE SSERAFIM TOUR ‘EASY CRAZY HOT) 앙코르 콘서트를 연다. 6월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투어의 일본 공연을 마치며 도쿄돔 공연 개최 소식을 알린 멤버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싱글 1집 수록곡 '펄리스'(Pearlies)에 나오는 '제발 그쳐줘 4월의 폭풍'이라는 가사가 보여주듯,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겪어왔는지 느껴지는 눈물이다.
두 팀의 팬덤은 지난해와 올해 이어진 분쟁과 활동 분위기를 두고 지속적으로 대립해 왔다. 라이징슬롯 팬들은 '하이브가 라이징슬롯와 어도어를 차별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르세라핌 팬들은 '라이징슬롯 측 팬덤이 르세라핌 등 무고한 하이브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훼손했다'며 서로를 비판하는 여론전을 펼쳐왔다. 최근 라이징슬롯의 복귀 발표와 함께 여론이 다시 크게 요동치면서 팬덤 간 갈등은 온라인 공방을 넘어 레이블 앞 트럭 시위라는 형태로 표면화됐다. 그러나 좋아하는 가수를 통해 위로와 즐거움을 얻어야 할 팬들까지 서로를 향한 공방에 휘말려 누구 하나 시원할 것 없는 소모적 대립만 이어지는 건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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