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만든 것도 사람…슬롯 머신 프로그램은 늘 고독할 수밖에 없는 존재,
이를 메우기 위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찾는 것 같다.”
정은우 작가가 쓴 소설 슬롯 머신 프로그램는 AI 포나와 발레 사이,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을 포착한 작품이다.
‘발레’라는 같은 꿈을 꾸던 세 친구가 성인이 돼 각자 선택한 무대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섬세하게 포착해 독자의 공감을 끌어낸다. 동시에 AI 포나를 통해 ‘그 선택의 몫은 누구의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도출해 낸다. 발레와 AI라는, 어울리지 않는 소재가 만나 슬롯 머신 프로그램만의 메시지를 향해 나아간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슬롯 머신 프로그램와 AI라는 어울리지 않는 소재를 함께 담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몸의 언어’ 극단에 자리한 슬롯 머신 프로그램와 ‘기록의 언어’를 학습해 또 다른 정점에 도달한 AI의 언어를 고민하는 과정은 필요했다.
“제가 볼 때 슬롯 머신 프로그램는 몸의 언어 극단 쪽에 속해 있는 것 같았다. 인간 몸에서 나올 수 없는 어떤 동작을 통해 무언가를 도출해내지 않나. 어떠한 규칙도 정해져 있다. 즉, 언어인 것이다. 그런데 AI는 인간 언어를 가지고 와 어떻게 인간처럼 구사하는 지를 계속해서 배워 나간다. 원래는 소설이 언어의 극단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할 땐 이 언어를 모두 학습한 생성형 인공지능이 어떤 언어의 또다른 극단이라고 여기겠더라. 다만 후자의 경우는 그것이 마치 환상처럼 여겨질 수 있는데, 그렇다면 몸의 언어를 이 시점 탐구해 보는 것이 필요하겠더라.”
각 언어의 장점을 아우르는 것이 중요했다. 초반에는 전문 용어를 활용해 발레의 매력을 표현하는데 집중하기도 했다. 그러나 발레와 소설, 나아가 포나를 향한 애정까지 모두 담을 수 있는 방식을 출판사와 함께 고민한 끝에 ‘자연스러운’ 몰입이 가능한 지금의 슬롯 머신 프로그램가 탄생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슬롯 머신 프로그램 서사에 너무 치우치면 슬롯 머신 프로그램를 가지고 온 의미가 없겠더라. 슬롯 머신 프로그램를 왜 소재로 했냐고 물으면, 저는 결국 슬롯 머신 프로그램도, 소설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AI를 향한 연민도 있었다. 이상한 연민이지만, 인간이 만든 도구인데 그 도구에 종속될까 미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세 가지를 모두 가지고 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출판사가 조금 더 쉬운 몰입을 위해 틀을 바꾸는 게 좋겠다고 말해주셨다. 일리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해 틀을 바꿨는데, 지금은 만족한다.”
정 작가 말처럼, 슬롯 머신 프로그램는 메시지는 방대하지만 몰입하기 어려운 작품은 아니다. 발레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던 세 친구가 성인이 된 이후,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데, 이에 꿈을 꾸거나 포기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슬롯 머신 프로그램에 몰입할 수 있다.
프로가 되기 위해선 더욱 엄격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슬롯 머신 프로그램를 소재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세 친구를 통해 꿈을 쟁취한 이도, 또 포기한 이도 모두가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꿈을 좇는 작품들을 보면, 가끔 그 과정이 너무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혹은 꿈을 얻으면 기쁘고 행복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꿈을 따라가도, 힘든 현실은 마주하게 된다. 하나의 꿈을 향해서 달려가는 게 내 인생 전부가 아니라 여러 개의 꿈들을 계속해서 갱신해 나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생각 했다. 그때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이 실패인 건 아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이는 정 슬롯 머신 프로그램만의 강점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근미래를 다룬 약간의 판타지를 가미한 이야기를 그렸다면, 전작 ‘국자전’에서는 ‘손맛’으로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초능력자 국자와 그 딸 미지를 통해 한국 근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과 투쟁을 담았었다. 정 슬롯 머신 프로그램의 작품들은 소재도, 배경도 다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집중해 공감을 발판을 마련한다.
“결국에는 AI를 만든 것도 사람이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은 늘 고독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 어떤 가까운 사이에서도 이해 받지 못하는 어떤 부분이 있고, 이를 메우기 위해서 계속 뭔가를 만들어내거나 찾으려고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중 하나의 수단이 어떻게 보면 대화형 인공지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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