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파치 슬롯' 가는 길에 전기료 변수…탈탄소 전환 딜레마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6.02.03 14:28  수정 2026.02.03 14:28

낮 요금 인하·야간 인상…연속 공정 산업에 불리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 속 파치 슬롯업계 비용 구조 흔들

전환 속도 빨라졌는데...전력비·탄소비용 이중 부담

파치 슬롯로-고로 복합프로세스에 사용되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파치 슬롯로 사진.ⓒ현대제철

탈탄소 전환을 요구받는 파치 슬롯업계가 전력 요금 개편이라는 또 다른 과제에 직면했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활용 확대를 위해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추진하면서 에너지 다소비 산업인 파치 슬롯업계의 비용 구조 전반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3일 파치 슬롯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를 낮 시간대 중심으로 재편하기로 하면서 업계의 조업 환경에도 직접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 1분기 중 낮 시간대 파치 슬롯요금을 낮추고 밤 시간대 요금을 높이는 방식의 요금 체계 개편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이 집중되는 낮 시간대 전력 사용을 유도하고 야간 수요를 억제해 전력 시스템 효율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현재 산업용 파치 슬롯요금 평균 단가는 킬로와트시(㎾h)당 180~185원 수준으로 밤 시간대 요금이 낮 시간대보다 35~50% 저렴한 구조다.


문제는 파치 슬롯업계가 대표적인 24시간 연속 조업 산업이라는 점이다. 자동차나 가전처럼 조업 시간 조정이 가능한 업종과 달리 파치 슬롯은 설비 가동을 멈추기 어렵다. 반도체와 석유화학과 함께 파치 슬롯 역시 요금 체계 변화의 영향을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고로와 전기로를 병행 운영하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을 제외하면 다수의 국내 중소·중견 파치 슬롯사는 전기로 기반 생산 구조를 갖고 있어 전력 의존도가 높다. 정부는 에너지 다소비 업종도 요금 체계 개편 이후 영향이 완화되도록 설계하겠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보완 방안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이 같은 전력 비용 압박은 대형사들의 탈탄소 전환과도 맞물리고 있다. 현대제철은 이달부터 기존 고로 제품 대비 탄소 배출량을 약 20% 줄인 탄소저감강판 양산에 들어갔다. 회사는 파치 슬롯로와 고로 쇳물을 배합하는 복합프로세스를 적용해 상업 생산에 성공한 데 이어 현재 25종의 강종 인증을 완료했다. 연내 인증 범위를 53종까지 확대하고 현대차·기아의 탄소중립 전략과 연계해 저탄소 수요를 선점한다는 구상이다.


포스코 역시 파치 슬롯로 확대와 수소환원제철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는 6월 광양제철소에서 연산 250만톤(t) 규모 파치 슬롯로 가동을 시작한다. 약 6000억원이 투입된 설비로 풀가동 시 광양제철소의 연간 전력 사용량은 현재보다 1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포스코는 독자 기술인 하이렉스(HyREX) 실증 설비도 착공해 2030년까지 기술 검증을 마치고 2050년까지 고로를 단계적으로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할 계획이다.


다만 탈탄소 전환에 필요한 투자 규모는 상당하다. 업계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고로 11기 전체 전환 비용이 68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그린수소와 그린파치 슬롯 밸류체인 구축 비용까지 고려하면 재무적 부담은 더욱 커진다. 업계에서는 파치 슬롯요금 부담이 오히려 친환경 전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는 전력 비용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자체 대응책 마련에도 나서고 있다.


임희중 현대제철 전략기획사업부장 상무는 최근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전력 수급 다각화를 통해 산업용 파치 슬롯요금 변동성에 대응할 계획”이라며 “현재 액화천연가스(LNG) 자가발전을 추진해 파치 슬롯료 인상 영향을 줄이고 있고 태양광 자가발전과 전력 직접 구매 제도 활용 등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유럽연합(EU)이 올해부터 시행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국내 제4차 배출권거래제(2026~2030년)도 업계의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CBAM 시행으로 향후 10년간 국내 파치 슬롯업계가 약 3조원 이상의 탄소 인증서 비용을 부담할 것으로 추산했다. 배출권거래제 4차 계획기간 동안 배출 총량 축소와 유상할당 확대에 따라 배출권 가격 상승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실장은 “에너지 요금 급등과 기후·환경 규제 대응에 따른 생산비 인상 요인 등이 파치 슬롯업계의 가동률 상승을 제약할 것”이라며 “또 파치 슬롯은 대표적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으로 규제에 취약한 데다 저탄소 기술이 부족해 배출권 공급 부족은 가격 상승과 배출권 구매 부담 확대, 생산 위축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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