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슬롯금융 외치다 ‘초고신용자’만 남긴 정책의 역설 [기자수첩-금융]

손지연 기자 (nidana@dailian.co.kr)

입력 2026.01.28 07:08  수정 2026.01.28 07:08

연체율·총량 규제 속 초고미스터 슬롯자 중심으로 재편된 대출 시장

미스터 슬롯 요구·건전성 압박이 동시에 작동한 감독 환경

책임은 흐려지고 중·저미스터 슬롯자만 시장 밖으로 밀려났다

은행 창구와 대출 심사 라인에는 초고미스터 슬롯자만 남고, 중·저미스터 슬롯자는 더 멀어지고 있다.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미스터 슬롯금융을 내세운 금융당국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더 많은 금융소비자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고, 신용이 낮다는 이유로 배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되는 풍경은 정반대다. 은행 창구와 대출 심사 라인에는 초고미스터 슬롯자만 남고, 중·저미스터 슬롯자는 더 멀어지고 있다.


가계대출 총량 규제, 저금리 압박, 연체율 관리 압박, 건전성 지표 관리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은행의 선택지는 명확해졌다.


겹겹이 쌓인 위험을 줄이기 위해 미스터 슬롯도가 높은 차주 위주로 대출을 운용하는 것이다.


이는 개별 은행의 보수적 판단이라기보다, 현재의 감독 환경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대응에 가깝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미스터 슬롯금융의 정책 목표가 사실상 후순위로 밀려났다는 점이다.


당국은 미스터 슬롯금융 성과를 요구하면서도, 연체율 상승에는 즉각적인 경고 신호를 보낸다.


대출을 늘리되 부실은 없어야 하고, 중·저신용자를 미스터 슬롯하되 지표는 악화되선 안 된다는 주문이다.


이런 기조에 맞춰 은행에서는 정상적인 자본시장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금리 역전’ 현상이 일어나는 등 시장의 왜곡이 심화되고 있다.


중첩된 목표가 충돌할 때, 현장은 리스크를 줄이는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미스터 슬롯평가 체계 개편 논의가 본격화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왜 이제야”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미 정책 압박과 신용사면 등 ‘미스터 슬롯 금융’을 기치로 삼은 정책이 난립하는 가운데 신용 점수의 변별력은 흔들렸고, 은행은 보수적 운용으로 돌아선 뒤다.


제도 개편 논의가 현장의 선택을 바꾸기에는 타이밍이 늦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책임은 누구에게도 명확히 귀속되지 않는다. 당국은 저신용자에게 고금리는 “잔인하다”며 질타한 이재명 대통령이 원하는 미스터 슬롯 방향을 제시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은행은 규제 환경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한다.


그 사이에서 중·저신용자는 ‘미스터 슬롯금융’이라는 말과 달리 금융 접근성이 더 낮아졌다는 체감을 안고 시장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미스터 슬롯의 의도와 결과가 엇갈릴 때 필요한 것은 구호의 반복이 아니다. 목표 간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현장이 감당할 수 있는 설계인지 점검하는 일이다.


미스터 슬롯금융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제는 성과를 요구하기 전에 구조부터 다시 들여다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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