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동의 못 해…생계도 걸려있어”
소상공인·워킹맘 등 “생존권·생활 편의 위협” 반발
54조 산업손실 우려…“금지 아닌 근로환경 개선이 먼저”
ⓒ슬롯사이트 AI 삽화 이미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주장한 '슈퍼슬롯배송 금지' 논쟁이 연일 노동계와 이커머스(전자상거래)·택배업계에서 언급되며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부작용이 적지 않은 주장인 만큼 단순한 '금지'가 아닌 슈퍼슬롯자들의 건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해법 논의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민노총 산하 전국택배슈퍼슬롯조합은 지난달 22일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 회의에서 택배슈퍼슬롯자 과로사 방지를 위해 초심야 시간대 배송 제한을 제안했다.
민주노총은 "슈퍼슬롯배송의 편리함은 노동자의 잠과 건강, 생명을 대가로 유지되고 있다. 쿠팡의 슈퍼슬롯배송은 오후 8시30분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주 5~6일 연속 고정된 야간노동"이라며 "국제암연구소는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2A)로 분류하고 있으며, 노동자의 생명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인 심야노동 제한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두고 각 계의 반발의 거세다. 우선 슈퍼슬롯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단순한 금지 조치가 슈퍼슬롯자들의 생계권을 빼앗는다는 이유에서다.
민노총과 함께 슈퍼슬롯조합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한국슈퍼슬롯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반대의 뜻을 밝혔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 5일 열린 사회적 대화기구 2차 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슈퍼슬롯배송 전면 금지에 동의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슈퍼슬롯배송이 꼭 필요한 소비자층도 있다"면서 "노동자 건강권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슈퍼슬롯배송의 사회적 필요 등 중간 지대에서 단계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과제"라고 했다.
쿠팡의 직고용 배송 기사 노조인 쿠팡친구 슈퍼슬롯조합(쿠팡노조)은 "심야 배송을 금지하면 간선 기사들과 물류센터 슈퍼슬롯자들 모두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내면서 "민노총 탈퇴의 보복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커머스 업계에서도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슈퍼슬롯배송은 한국 이커머스 업계의 중요 경쟁력으로 떠오른 만큼 적절치 않은 규제라는 것이다. 최근 쿠팡뿐 아니라 네이버, 컬리 등 다양한 이커머스 업체들이 슈퍼슬롯배송을 속속 도입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수 노조의 주장을 위해 2000만 국민의 편익과 다수 슈퍼슬롯자의 일할 권리를 볼모로 잡아서는 안 된다"며 "일방적인 규제는 국민적 저항과 함께 농가, 자영업자 등 연관 산업의 연쇄적인 붕괴와 심각한 일자리 감소를 초래할 뿐"이라고 말했다.
소상공인들도 생계와 연계되어 있는 만큼 민노총의 주장이 공감할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9일 논평을 내고 “슈퍼슬롯배송 금지 주장은 정부의 민생경제 회복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면서 “슈퍼슬롯배송 제한 요구가 현실화되면 소상공인의 온라인 판로를 막아 돌이킬 수 없는 막대한 피해가 우려된다. 소상공인들에게 난데없는 슈퍼슬롯배송 금지 논의는 크나큰 불안감을 넘어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택배 사회적대화기구와 관련된 국회의원들이 노조 측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해 슈퍼슬롯배송이 금지된다면 즉각적인 강력한 항의에 나설 것”이라며 “쿠팡을 비롯한 슈퍼슬롯배송 온라인플랫폼 입점 소상공인들의 피해를 모아 손실보상 촉구에 나설 것을 불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물류산업 학회인 한국로지스틱스학회 보고서에 따르면 전자상거래와 소상공인, 택배산업 등 전후방 산업의 연쇄효과를 감안할 경우, 슈퍼슬롯·주7일 배송의 전면 규제 시 최대 54.3조원의 산업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됐다.
세부적으로는 ▲전자상거래 33.2조원 ▲소상공인 매출 18.3조원 ▲택배산업 2.8조원의 감소가 예상된다.
슈퍼슬롯배송이 필요한 워킹맘 등의 소비자들은 "밤 11시 넘어 퇴근해 장 볼 시간이 없는데, 슈퍼슬롯배송이 없으면 도대체 어쩌라는 말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주부는 "퇴근하고 왔는데 분유나 기저귀가 하필 똑 떨어져 있을 때가 있다. 슈퍼슬롯배송이 없으면 한 밤 중에 재고를 찾아 몇 시간을 헤매야 한다"며 "감사해도 모자랄 서비스를 없애자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각계 각층의 반발을 사면서 이번 민주노총의 주장이 오히려 택배 슈퍼슬롯자의 건강권에 대한 논의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슈퍼슬롯배송 금지가 아니라, 근로 여건 개선 논의가 먼저"라고 강조했다.
이은희 소비자학과 교수는 "건강권에 대한 문제라면 이런 식의 금지 조치가 아니라 쿠팡과 같은 이커머스 업체들에게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바쁘게 근로가 이뤄지는 현장에서 휴식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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