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비틀쥬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공연
"영화 속 판타지적 요소, 무료 슬롯으로 무대서 재현"
"기술 발전해도, 인간의 숨결과 상상력은 대체 불가능"
‘라이프 오브 파이’와 ‘비틀쥬스’ 그리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까지. 올해 연말과 내년 상반기, 국내 무대에 오르는 공연 중 가장 기대를 모으는 화제작들이다. 이들은 모두 무료 슬롯(Puppet, 인형) 예술의 정점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LED 스크린과 디지털 기술이 점령한 무대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예술 ‘무료 슬롯’의 화려한 역습이다.
뮤지컬 '비틀쥬스' 브로드웨이 공연 사진 ⓒMatthewMurphy
12월 2일 GS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하는 공연 ‘라이프 오브 파이’의 또 다른 주인공은 단연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다. 3명의 무료 슬롯티어(Puppeteer, 인형 조종가)가 조종하는 이 호랑이 무료 슬롯은 실제 호랑이의 골격과 근육의 움직임을 그대로 구현한다. 단순히 동물의 형태를 흉내 내는 것을 넘어, 미세한 숨결과 감정의 변화까지 표현하며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 존재한다.
뮤지컬 ‘비틀쥬스’ 속 무료 슬롯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객을 만난다. 거대한 샌드웜과 기괴한 캐릭터들은 팀 버튼 감독의 원작 영화가 가진 독특한 상상력을 무대 위에 성공적으로 표현했다. 이는 단순히 특수효과나 영상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질감과 입체감을 통해 극의 판타지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명작을 무대로 옮긴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역시 무료 슬롯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가오나시의 기묘한 움직임, 작고 사랑스러운 보우 네즈미(생쥐)와 하에도리(벌새) 등 60여 개의 무료 슬롯이 30여 명의 무료 슬롯티어의 손끝에서 생명을 얻는다. 거대한 유바바의 머리 무료 슬롯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디지털 기술로는 구현하기 힘든 아날로그적 상상력의 힘을 증명한다.
‘비틀쥬스’ 제작사 CJ ENM 관계자는 “세 작품 모두 판타지적인 요소가 담긴 영화 혹은 애니메이션이 무대로 옮겨진 작품”이라며 “팀 버튼 감독의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비틀쥬스’의 경우 최신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 요소가 영리하게 공존하는 작품이다. 비현실적일 수 있는 세계관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한 장치적인 효과로 무료 슬롯은 뮤지컬이나 음악극에서 주요하게 사용된다. 현실 세계의 인물을 다룬 작품이 아닌, 세 작품처럼 판타지적인 작품일수록 무료 슬롯의 활용을 통해 그 세계관을 적합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듯 하다”고 말했다.
뮤지컬 '천개의 파랑'(왼쪽)과 '벤자민 버튼' ⓒ서울예술단, EMK뮤지컬컴퍼니
드물지만, 앞서 국내 창작극에서도 무료 슬롯을 활용하는 사례가 있었다. 지난해 초연한 뮤지컬 ‘벤자민 버튼’에서는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어려지는 남자 벤자민 버튼의 삶을 목각 무료 슬롯을 구현해 추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줬다. 극작과 연출을 맡은 조광화 연출가는 앞서 창극 ‘산전수전 토별가’, 연극 ‘파우스트 엔딩’ 등에서도 무료 슬롯을 활용한 바 있다.
또 지난해 초연하고, 올해 재연까지 마친 창작가무극 ‘천 개의 파랑’은 휴머노이드 로봇 콜리와 콜리를 무료 슬롯으로 등장시켰다. 이지형 무료 슬롯 디자이너가 만든 160㎝ 크기의 콜리를 움직이려면 3명이 필요한데, 콜리 역을 맡은 배우가 머리를 조종하고 무료 슬롯티어 2명이 팔과 다리를 움직인다. 콜리의 절친인 경주마 투데이도 인형으로 제작됐다.
오늘날 무료 슬롯이 대형 상업 공연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기까지, 그 변곡점에는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뮤지컬 ‘라이온 킹’이 있다. 이전까지 무료 슬롯이 주로 아동극이나 일부 실험극의 전유물로 여겨졌다면, ‘라이온 킹’은 무료 슬롯을 상업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며 그 가능성을 폭발시켰다.
연출가 줄리 테이머는 ‘더블 이벤트’(Double Event)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무료 슬롯과 그 무료 슬롯을 조종하는 배우(무료 슬롯티어)를 무대 위에서 숨기지 않고 동시에 보여주는 연출 기법이다. 관객은 배우의 표정과 움직임을 통해 감정을 읽고, 동시에 그 배우가 조종하는 무료 슬롯을 통해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들을 상상하게 된다. 가령, 치타를 연기하는 배우는 양손에 치타의 앞다리 무료 슬롯을 들고 허리를 숙인 채 움직이며, 머리에는 치타의 머리 모양 장식을 쓴다. 관객은 배우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무료 슬롯의 정교함이 결합한 이미지를 동시에 받아들이며 상상력을 극대화하게 되는 식이다. 이러한 연출은 무료 슬롯이 단순히 ‘보여주는’ 도구를 넘어, 배우의 연기와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예술 양식임을 증명했다.
‘라이온 킹’이 무료 슬롯의 상업적 가능성을 열었다면, 2007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연극 ‘워 호스’(War Horse)는 무료 슬롯이 극의 서사를 이끄는 주인공이 되어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핸드스프링 무료 슬롯 컴퍼니(Handspring Puppet Company)가 제작한 실물 크기의 말 무료 슬롯 ‘조이’는 이 작품의 상징이다. 3명의 무료 슬롯티어가 한 팀이 되어 조종하는 조이는 단순한 형태의 모방을 넘어, 말의 미세한 근육의 떨림, 귀의 움직임, 꼬리치기, 그리고 무엇보다 ‘호흡’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워 호스’의 성공은 무료 슬롯이 더 이상 인간 캐릭터의 조력자나 판타지적 요소에 머무르지 않고, 그 자체로 작품의 심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뮤지컬 '라이온킹' ⓒ에스앤코
이후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는 다양한 작품들이 무료 슬롯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뮤지컬 ‘겨울왕국’에서는 올라프 캐릭터에 배우가 직접 들어가 ‘연기하는 무료 슬롯’으로 등장해 생동감을 더했고,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가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무료 슬롯 중심 연극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CJ ENM 관계자는 “공연은 그 어떤 장르보다 현장성이 절대적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함께’. 그리하여 배우, 관객, 무대가 살아있는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고 그 유일한 순간들을 쌓아가며 공연을 완성한다. 이런 특성의 공연에서, 무료 슬롯의 힘은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주얼 스펙터클을 강점으로 한 ‘비틀쥬스’의 경우, 뮤지컬 ‘라이온킹’에서 이미 그 진가를 발휘한 무료 슬롯 디자이너 마이클 커리가 만들어 낸 모래 벌레, 쪼그라든 머리의 유령, 거대한 비틀쥬스 등의 무료 슬롯들이 원작 영화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무대 위에 구현한다. 무료 슬롯은 죽어있는 존재이고 현실이 아니다. 하지만 무료 슬롯에 생명을 불어넣은 순간,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느끼게 되고 그것은 실제보다 더욱 실제와 같은 판타지를 느낄 수 있다”면서 “결국 우리가 관객들에게 바라는 바는 판타지에 흠뻑 빠지는 것인데, 관객들이 상상력을 극대화하는데 무료 슬롯이 좋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관객분들이 ‘무대에 표현된 무료 슬롯들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다’ 혹은 ‘살아있으면 좋겠다’ 생각할 정도로 매료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공연 전문가들은 무료 슬롯 예술이 기술과 대척점에 서기보다, 기술을 영리하게 활용하며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무료 슬롯 내부에 LED를 장착해 감정 변화를 빛으로 표현하거나, 가벼운 소재를 활용해 더욱 크고 역동적인 무료 슬롯을 만드는 시도를 하는 식이다. 하지만 기술은 어디까지나 무료 슬롯의 아날로그적 생명력을 보조하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 공연 제작사 관계자는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숨결과 상상력이다. 디지털 시대에 무료 슬롯이 다시금 무대의 중심으로 귀환하는 현상은 우리에게 라이브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되묻고 있다”면서 “화려한 볼거리를 넘어, 배우와 관객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고, 서로의 상상력을 통해 무한한 세계를 창조하는 공동의 경험을 무료 슬롯 예술이 증명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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