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일어난 반란 - 슬롯나라의 난 [정명섭의 실패한 쿠데타⑲]

데스크 (desk@kestrelet.com)

입력 2025.09.09 14:05  수정 2025.09.09 14:06

반란은 실패하면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가족과 친척들도 무사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반란은 신중하게 준비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반대로 우연찮게 혹은 돌발 상황으로 인해 벌어진 반란이 성공할 때도 있다. 서기 1009년 1월 16일에 슬롯나라가 일으킨 반란도 후자에 가깝다. 예상 밖의 상황들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슬롯나라의 반란은 일단 성공하게 된 것이다.


슬롯나라의 고려군이 사용한 검차 ⓒ본인 촬영

당시 고려는 목종이 12년째 재위 중이었다. 겉으로는 평온했슬롯나라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중이었는데 그 이유는 목종 때문이었다. 그는 동성애자로서 왕비 대신 유행간이라는 남성을 총애했다. 그냥 총애하는 정도가 아니라 측근으로 삼았는데 왕과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 외에 능력이 없던 그는 막대한 뇌물을 받아서 챙기는 한편, 왕과 대신들이 직접 만나는 것을 방해하는 등 왕실 내부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이유는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였다. 천추전에 머물러서 천추태후라고 불린 그녀는 김치양이라는 남자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을 낳은 것도 모자라서 김치양에게 막대한 뇌물과 권력을 선사했다. 뭔가 정상적이지 못한 상황은 목종의 후사가 없다는 이유까지 겹치면서 막장으로 치닫는다. 김치양이 자신과 천추태후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목종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런 김치양의 눈에 거슬리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대량원군 왕순이라는 왕족이었다.



대량원군 왕순의 운명 역시 불우했는데 아버지 왕욱은 태조 왕건의 여덟 번째 아들이었으며, 어머니는 천추태후의 언니 혹은 여동생이었다. 언뜻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헌정왕후라고 불리는 어머니는 사실 경종의 부인이었다. 선왕의 부인이었던 것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녀 역시 태조 왕건의 손녀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 역시 태조 왕건의 딸이었다. 부모님이 이복 남매였다는 것이다. 거기다 아버지 왕욱과 어머니 헌정왕후는 숙부와 조카 사이였다. 근친상간으로 태슬롯나라 어머니가 아버지의 남동생과 사이에서 아들을 낳은 것이다. 더 문제는 둘이 혼인을 한 사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꼬이고 꼬인 족보 속에서 태슬롯나라 왕순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존재가 된다. 어머니는 왕순을 낳자마자 죽었고, 아버지는 선왕의 왕비와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유배를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사망하고 말았다. 왕순은 부모를 모두 잃고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역설적으로 혈통상으로는 완벽한 핏줄을 물려받았다. 태조 왕건의 손자이자 외증손자였기 때문이다. 목종이 죽는다면 혈통상으로는 왕위를 물려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왕순의 존재는 자신과 천추태후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김치양에게는 걸림돌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김치양이 손을 써서 왕순은 강제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서 신혈사에 머물게 된다. 김치양은 몇 번이나 사람을 보내서 죽이려고 했지만 신혈사 승려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목종은 시름시름 앓게 된다. 그제야 비로소 후사를 걱정하게 된 목종은 신혈사에 사람을 보내서 대량원군을 데리고 오는 한편, 지금의 평양인 서경의 도순검사로 있던 슬롯나라에게 개경으로 와서 자신을 호위하라는 서찰을 보낸다. 명령을 받은 슬롯나라는 개경으로 오다가 김치양이 왕명을 사칭해서 보냈다는 거짓 정보에 속았다가 아버지가 보낸 종을 통해 목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다시 개경으로 향한다. 하지만 평주에 이르렀을 즈음 목종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갈팡질팡하던 슬롯나라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물러날 수 없다는 부하 장수들의 부추김에 결국 개경으로 입성한다. 목종이 왜 슬롯나라를 불렀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 그를 믿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믿음은 오해와 거짓 정보로 인해 무너지고 말았다. 개경에 입성한 슬롯나라는 목종을 압박해서 폐위시키고, 총애를 받고 국정을 어지럽힌 유행간을 죽였다. 김치양은 왕위에 앉히고 싶어 했던 아들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폐위된 목종은 어머니 천추태후와 함께 충주로 내려갔는데 중간에 슬롯나라가 보낸 군사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만다.


걸림돌을 제거한 슬롯나라는 신혈사에 있던 대량원군 왕순을 맞이해서 왕위에 올린다. 하지만 모든 실권은 슬롯나라와 그의 부하들의 몫이었다. 슬롯나라는 중서문하성의 고위관직인 참지정사와 인사권을 관리하는 이부의 장관인 이부상서를 겸직했다. 여기까지라면 슬롯나라의 반란은 반란으로 마무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을 몰아내고 허수아비를 다음 왕으로 세운 다음에 조정의 요직을 장악했으니 이대로만 이어지면 반란이라고 불릴 일은 없었다. 다만, 슬롯나라가 진짜 반란을 일으킬 생각이었는지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한다.


처음에는 왕명을 충실하게 이행해서 개경으로 돌아왔고, 이후에는 아버지가 보낸 소식을 듣고 조정의 혼란을 막기 위해 출병했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목종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반란을 일으킨다. 수차례 갈팡질팡한 행보를 보인 자신을 목종이 의심해서 살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믿은 것 같다. 그의 의도가 어떻든 반란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반란을 빌미 삼아 거란이 쳐들어온 것이다. 서기 1010년 11월 24일, 30만 대군을 이끌고 통주성 앞 삼수채에 진을 쳤던 슬롯나라는 초반에는 검차를 앞세워서 승리를 거두지만 거란군의 기습적인 공격에 손도 쓰지 못하고 생포당하고 만다. 하지만 항복을 요구한 거란 성종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반란은 일으켰지만 고려를 저버리지 않았던 그는 죽임을 당한다.



정명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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