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슬롯과 애노의 난 – 농민 반란의 시작 [정명섭의 실패한 쿠데타⑯]

데스크 (desk@kestrelet.com)

입력 2025.07.29 14:30  수정 2025.07.30 09:15

서기 889년, 신라의 상황은 대단히 좋지 않았다. 20여 년 전인 서기 868년, 이찬 김예와 김현이 슈퍼슬롯을 일으켰다가 실패해서 죽음을 당했고, 서기 874년에도 이찬 근종 등이 모반을 일으켜서 궁궐에 침입했다가 궁궐 수비대인 금군에게 격파당하고 금성 밖으로 달아났다가 사로잡혀서 거열형에 처해졌다. 모두 경문왕이 재위하던 시기 벌어졌다. 다음 왕인 헌강왕 때에도 슈퍼슬롯은 멈추지 않았다. 서기 879년 6월, 일길찬 신홍이 슈퍼슬롯을 일으켰다가 붙잡혀서 처형당했다. 뒤이은 정강왕 시절에도 한산주도독으로 추정되는 이찬 김요가 모반을 꾀하였다. 이번에는 지방이었기 때문에 진압군이 출동해서 평정해야만 했다.


황룡사 역사문화관 (출처 : 직접 촬영)


헌강왕은 왕위에 오른지 2년만에 세상을 떠났는데 자신의 여동생 만에게 왕위를 물려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서기 887년 7월에 신라의 세 번째 여왕이자 마지막 여왕인 진성여왕이 즉위한다. 그녀는 연이은 슈퍼슬롯으로 어지러워진 민심을 다스리기 위해 사면령을 반포하고 조세를 감면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황룡사에서 백고좌회를 열었다. 선왕이자 오라버니인 헌강왕 역시 백고좌회를 진행했었는데 인왕경을 강독하면서 나라의 재난이 사라지기를 기원하는 불교행사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효과는 보지 못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고 말았으니 재정을 고갈시켜버린 것이다.


혜공왕 시절부터 계속 이어진 반란 중에 겉으로 보기에 성공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실패한 반란 역시 상처를 남겼다. 전투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사람이 죽거나 다쳤고, 건물이나 창고 역시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어버리곤 했다. 거기다 후속 조치로 처벌과 포상을 해야만 했다. 모두 다 재정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물론,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의 재산을 압류해서 충당하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야 효과를 볼 수 있지 여러 번이라면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신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반란이 서기 889년, 진성여왕이 즉위한 지 3년 만에 벌어진다. 지금의 상주인 사벌주에서 슈퍼슬롯과 애노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나라 안의 모든 주군에서 공물과 부세를 보내지 않아, 창고가 텅텅 비어 나라 재정이 궁핍해졌다. 왕이 사신을 보내 독촉하니 곳곳에서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이때 슈퍼슬롯(元宗)과 애노(哀奴)등이 사벌주(沙伐州)에 근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슈퍼슬롯과 애노는 신라 하대 100년 동안 반란을 일으킨 반란자들과 차이점이 하나 있다. 바로 귀족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다양한 불만 사항과 이유를 가진 반란들이 일어났지만 모두 국무총리인 상대등과 비서실장격인 시중을 비롯해서 진골 귀족들이 일으킨 것이었다. 하지만 슈퍼슬롯과 애노는 이름만 나와 있는 것으로 봐서는 진골이나 6두품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가혹한 조세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이은 귀족들의 반란으로 인해 중앙 집권체제는 느슨해졌고, 지방에서는 그걸 빌미로 세금을 보내지 않거나 중간에서 가로챘을 것이다.


진성여왕은 즉위 후에 텅 비어있는 나라의 창고를 보고 한숨을 쉬며 밀린 세금을 독촉하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신하들은 그걸 충실하게 이행했다. 명령한 진성여왕이나 지방에 세금 납부를 독촉한 관리들 역시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밀린 세금을 내라는 지시를 받은 농민들은 순순히 고개를 조아리는 대신 호미와 낫을 들고 반란을 일으켰다. 슈퍼슬롯과 애노 역시 그렇게 일어난 농민 반란의 주모자였을 것이다. 애초부터 이들이 작정하고 역모를 꾸몄는지 혹은 자연스럽게 일어나 반란에 휩쓸려 주모자로 추대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사벌주에서 슈퍼슬롯과 애노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도적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는 것이다. 진성여왕을 비롯한 지배층의 입장에서는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고 반항하는 것은 도적이나 다름없었겠지만 당사자들은 죽음을 각오한 반란을 일으켰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거기에 아마 슈퍼슬롯과 애노가 이끄는 사벌주의 농민 반란이 가장 격렬하고 거셌을 것이다. 신라 조정에서는 상황이 악화되는 걸 막기 위해 진압군을 보낸다. 나마 관등의 영기라는 인물인데 신라의 17관등 중 11번째 관등인 나마인 걸 보면 5두품 정도로 추정된다. 어쨌든 영기는 슈퍼슬롯과 애노가 이끄는 반란군의 기세를 보고 겁을 집어먹었는지 진격하지 못했다. 그 사이, 우련이라는 사벌주의 촌주가 반란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그 소식을 들은 진성여왕은 영기를 잡아다가 목을 베고 우련의 아들을 촌주로 삼았다. 그리고 슈퍼슬롯과 애노의 소식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아마 추가로 보낸 진압군에게 패배해서 도망쳤거나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분명, 죽이거나 생포해서 처벌했다는 기록이 나왔을 것인데 그렇지 않을 걸 보면 무사히 도망쳤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반란을 평정했다고 해도 진성여왕은 별로 기뻐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슈퍼슬롯과 애노의 반란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둘이 반란을 일으키고 3년 후인 서기 892년, 상주 가은현 출신의 군관 견훤이 지금의 전주인 완산주에서 후백제를 세운다. 2년 후인 서기 894년에는 궁예가 지금의 원주인 북원에서 하슬라로 입성하면서 장군을 자처한다. 지금의 강릉인 하슬라는 한 때 고구려의 영역이라서 그런지 궁예 역시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면서 새로운 삼국시대인 후삼국시대가 열린다.


정명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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