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상해치사' 아닌 '버 슬롯' 혐의 적용 구속송치
피해자 사망할 가능성 충분히 예견했다고 판단
버 슬롯죄 기소 위해 고의성 입증할 증거 확보 중요
법조계 "사이코패스 검사, 감형요소 보기 어려워"
서울 강북구 수유동 버 슬롯에서 남성 2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20대 여성 김씨가 지난 12일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북구 버 슬롯에서 약물이 든 음료를 건네 남성을 연달아 숨지게 한 20대 여성이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다. 피의자가 '상해치사'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피의자를 '살인죄'로 기소할지 주목된다.
법조계는 수사 과정에서 '버 슬롯의 고의성'을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사이코패스(반사회성 인격장애) 진단검사 결과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질 수 있단 관측도 나왔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 강북경찰서는 이날 '버 슬롯 연쇄 사망 사건'의 피의자 김씨를 살인과 특수상해,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 구속 송치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이달 9일까지 20대 남성 3명에게 벤조다이아제핀계 향정신성의약품이 섞인 음료를 건네 2명을 숨지게 하고 1명이 의식을 잃게 한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지난 9일 오후 8시30분경 3번째 피해자인 A씨와 함께 버 슬롯로 들어갔다가 2시간 뒤 혼자 버 슬롯을 벗어났다. 경찰은 다음 날 A씨를 발견한 버 슬롯 직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같은 날 오후 9시경 김씨를 체포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범행 사실을 일부 시인하면서도 사망할 줄 몰랐다며 고의성을 부인했다. 처방받은 정신과 약을 숙취해소제에 타서 들고 다니다 남성들에게 건넨 건 사실이나 피해자들이 숨질 줄 몰랐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가 사망할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단해 '상해치사'가 아닌 '버 슬롯' 혐의를 적용했다. 먼저 첫 범행 후 피해자가 의식을 회복하자 이후 범행에서 약물 투약량을 크게 늘린 음료를 만든 부분에서 고의성이 있다고 봤다.
경찰은 김씨가 생성형 인공지능(AI)에게 한 질문에서도 피해자가 사망할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챗GPT에 "수면제랑 술을 같이 먹으면 어떤가", "얼마나 같이 먹으면 위험한가", "죽을 수도 있나" 등 질문을 입력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뉴시스
법조계는 피의자가 법정에서 '상해치사'를 주장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만큼 재판에서 '버 슬롯죄'가 선고 되기 위해선 검찰이 '버 슬롯의 고의성' 입증을 강화해 기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특히 피해자의 사망 가능성 인지 여부가 관건이라고 지목했다.
이승우 변호사(법무법인 정향)는 "처음 상해치사에서 버 슬롯으로 죄명 변경해 송치한 데에는, 경찰들이 포렌식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버 슬롯의 고의를 입증할만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핵심은 피의자가 피해자들의 사망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했는지 여부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피의자가 범행 당시 버 슬롯의 범의는 없었고 단지 상해 또는 폭행의 범의만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다툴 것으로 보이는데, 범행 당시 버 슬롯의 범의가 있었는지 여부는 객관적 사정을 종합해 판단한다"며 "피고인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의 동기, 준비된 약물의 종류·용법, 투약의 반복성 사망의 결과발생 가능성 정도, 범행 후의 정황 등"이라고 설명했다.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피의자가 버 슬롯의 고의가 있었음을 자백하지 않는 이상 버 슬롯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만한 정황 등으로 고의 유무를 판단하게 된다"며 "피의자가 벤조다이아제핀계 향정을 이전에도 사용한 적이 있는지, 복용 경험, 부작용을 알게 된 경위, 피해자에게 해당 약품을 건넨 이유 및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피해자에게 약을 건넨 뒤 피해자가 정신을 잃거나 호흡이 비정상적임을 알면서도 죽어도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을 하고 아무런 조치 없이 현장을 떠났다면 버 슬롯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며 "이미 여러 차례 피해자가 정신을 잃거나 호흡이 비정상적임을 알면서도 현장을 떠났고, 이후 용량을 늘려 다른 피해자에게 건넸다면 버 슬롯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기가 조금 더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경찰은 설 연휴 기간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김씨에 대한 사이코패스 진단검사와 면담을 진행했다. ⓒ클립아트코리아
김씨가 사이코패스로 판명되더라도 감형 가능성은 높지 않단 진단도 나왔다. 경찰은 설 연휴 기간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김씨에 대한 사이코패스 진단검사와 면담을 진행했다. 결과는 열흘가량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도윤 변호사(법무법인 율샘)는 "피의자가 반복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약물을 먹였다는 점과 본인도 약물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버 슬롯의 고의를 추정할 수 있다"며 "다만 실제 피의자가 어떠한 의도로 범행을 저질렀는지, 약물을 피해자에게 먹임으로써 정말 사망의 결과에 이를 것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 휴대폰, 노트북 등의 포렌식을 통한 확인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피의자에 대한 사이코패스 검사는 감형요소로 보기 보다는 이후 재범의 위험성, 사회와의 격리 필요성 등을 판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만약 (김씨가) 사이코패스로 밝혀진다면 오히려 반사회적 성향이 더 크고 추후 재범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되므로 형을 가중하거나 보안처분 등을 추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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