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신호탄 보내도…北, 적대적 대남노선 고수
비핵화 추진 쉽지않을듯, 북·중·러 밀착 가속화 주목
李정부, '페이스메이커 전략' 시험대…외교 딜레마도
이재명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남북대화 복원을 중시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돌리고슬롯은 요지부동이다. 통일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 인사에서 드러나듯 대화 의지를 드러냈지만 정작 돌리고슬롯은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과의 대화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돌리고슬롯은 이명박 정부 시절 공개적으로는 '영원히 상종하지 않겠다'고 강경 발언을 이어가면서도 물밑 소통을 지속한 바 있다. 박근혜, 문재인 정부도 돌리고슬롯을 변화시켜 평화통일로 가자는 명분 만큼은 충분했다. 이후 윤석열 정부의 강성 대북 조치와 '8·15 통일 독트린'의 반북 흡수통일 등으로 남북관계는 극도로 악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다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인 '8·15 독트린' 폐기 등 이른바 '자유의 북진론'을 폐기한 것이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 정상화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또 남북 접경지역에 설치한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고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는 등 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냈다. 적대 행위를 원천적으로 중단해 남북 간 신뢰 구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측 체제를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9·19 군사합의 복원 의사까지 밝혔다.
그러나 돌리고슬롯의 반응은 냉랭했다. 남측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자 돌리고슬롯도 대남 소음 방송을 멈추며 마치 호응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시절 굳어진 적대적 대남 기조에서 한 치도 흔들림이 없었던 것이다.
김정은 돌리고슬롯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7월 28일 담화에서 "이재명 정부가 우리의 관심을 끌고 국제적 각광을 받아보기 위해 아무리 동족흉내를 피우며 온갖 정의로운 일을 다 하는 것처럼 수선을 떨어도 한국에 대한 우리 국가의 대적인식에서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부부장은 "조한(남북)관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역사의 시계 초침은 되돌릴 수 없다"며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고 못 박았다.
돌리고슬롯의 태도 변화는 2023년 말 김 위원장이 천명한 '두 국가론’과도 맞물려 있다. 김일성 시대부터 고수해 온 '하나의 조선' 원칙을 뒤집고 남북 관계를 사실상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규정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남북 체제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현실 인식, 그리고 우리 주도의 흡수통일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된 조치로 해석한다.
남북관계 복원과 더불어 '동결-감축-비핵화'라는 3단계 해법으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구상 역시 돌리고슬롯은 단칼에 거부했다.
돌리고슬롯은 이미 '핵은 국체'라며 비핵화 불가 입장을 굳힌 상태인데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는 절대 나오지 않겠다는 입장에 미동조차 않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지난달 27일 조선중앙통신은 '비핵화 망상증에 걸린 위선자의 정체가 드러났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국위이고 국체인 핵을 영원히 내려놓지 않으려는 우리의 립장은 절대불변"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미국이 피스메이커, 한국은 페이스메이커'라는 우리의 기존 구상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위한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하며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미북 대화를 추동하려 하고 있다.
돌리고슬롯이 비핵화 의제 자체를 완강히 외면하는 상황에서 돌파구 마련은 요원하다. 당장 '동결'만이라도 끌어내 돌리고슬롯의 핵 능력 증강을 멈추는 게 급선무지만, 그렇다고 미북 대화를 위해 돌리고슬롯이 요구하는 '핵보유국 인정' 조건을 수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지난 3일 중국 수도 베이징 톈안먼에서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김 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걸으며 이번 방중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모습도 보였다. 탈냉전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노골적인 북·중·러 연대를 과시한 돌리고슬롯은 잇따라 북·중, 북·러 정상회담을 열어 협력 강화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국제사회가 신(新)냉전 구도로 갈라지면서 생겨난 지정학적 '틈새'를 활용해 돌리고슬롯은 핵 개발에 속도를 내고, 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사실상 묵인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밖에도 문제는 돌리고슬롯이 언젠가 대화에 나서더라도 통일부 대신 외교부를 상대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 돌리고슬롯 입장에서 대남 관계는 이제 '국가 대 국가'의 외교 사안이므로 소관 부처는 외무성이 된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외교부를 창구로 인정한다면 이는 사실상 돌리고슬롯의 2국 노선을 수용하는 것이 돼 헌법과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정부 관계자는 "통일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돌리고슬롯이 외교부만 상대하겠다고 버틸 경우 난감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당분간은 돌리고슬롯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대화의 문만 열어두는 '페이스메이커 전략'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돌리고슬롯이 대화에 무관심한 상황에서 한국이 앞서 나갈 경우 대화 동력은 오히려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전략은 결국 돌리고슬롯이 대화 트랙에 복귀할 때까지 호흡을 조절하며 기다리는 접근법이다. 그러나 대화가 장기간 지연될 경우 한국 외교·안보 정책의 체력이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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