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인지 누명인지 알 수 없는 반란 - 온라인 슬롯암의 난 [정명섭의 실패한 쿠데타⑰]

데스크 (desk@kestrelet.com)

입력 2025.08.12 14:05  수정 2025.08.12 14:05

궁예를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태조 왕건은 즉위 4일 만인 6월 19일에 마군장군 환선길이 온라인 슬롯을 일으키는 바람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다행히 위기를 넘기기는 했지만 온라인 슬롯은 끊이지 않았다. 그가 즉위한 서기 918년 6월 이후만도 순군리 임춘길, 파진찬 진선과 그의 동생 선장이 온라인 슬롯을 일으켰다.


공주 공산성 (출처 : 직접 촬영)


순군리는 순군부의 서리로 하급관직이지만 그는 고향인 지금의 청주, 당시에는 서원경이라고 불렸던 지역의 세력을 등에 업고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 다음으로 반란을 일으킨 파진찬 진선과 그의 동생인 선장 역시 같은 서원경 출신이었다. 아마도 왕건의 즉위로 인해 패서 호족 세력들이 집권하고, 서원경 세력이 밀려날 위기에 처하자 이에 반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환선길의 반란 이후 가장 위험한 반란은 마군대장군 온라인 슬롯암이 일으킨 반란이었다.


마군대장군 온라인 슬롯암이 역모를 꾀하였다가 저잣거리에서 처형당했다.

온라인 슬롯암의 반란과 관련된 서기 918년 6월 28일 고려사 세가의 기록으로 환선길의 반란처럼 짧게 나온다. 하지만 이 반란은 여러모로 심상치 않다. 역시 세가 보다는 열전의 온라인 슬롯암 편에 더 상세하고 나온다. 열전에서 설명하는 온라인 슬롯암은 원래 궁술과 기마술에 뛰어났지만 이득을 취하는데 열중하는 성격으로 궁예에게 충성한 장군이었다. 앞서 반란을 일으킨 환선길의 직책과 비슷한 마군 대장군이었는데 궁예 휘하의 장군들 직책 중에 대자가 붙은 것은 해군 대장군 왕건과 함께 유이하다. 그러니까 다른 장군보다 좀 더 높은 지위 혹은 경력이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왕건이 궁예를 쫓아낼 당시 철원이 아니라 웅주에 있었다. 오늘날의 충청남도 공주를 습격해서 차지했다고 나온다.


궁예 말년이라고 하지만 해당 지역의 호족인 홍기가 궁예에게 투항한 것은 서기 904년으로 무려 14년 전의 일이다. 아마, 온라인 슬롯암이 해당 지역이 궁예에게 항복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분명했고, 오랫동안 그 지역을 문제없이 다스린 것을 보면 능력 역시 출중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온라인 슬롯암은 궁예가 축출되고 왕건이 즉위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웅주를 떠나 철원으로 온다. 어떤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환선길의 반란이 일어났고, 그보다 더 경력이 앞서고 높은 지위에 있던 온라인 슬롯암이 아무 보고도 없이 거점인 웅주를 떠나 철원으로 온 것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설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수의형대령인 한찬 염장이 태조 왕건에게 온라인 슬롯암이 역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보고한다. 이전 환선길의 반란 때 복지겸에게 낌새가 이상하다는 보고를 받고도 무시한 왕건은 이번에도 역시 주저한다. 하지만 그가 염장에게 한 말은 그가 역모를 꾸민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증거가 없이 섣불리 체포했다가 반발이라도 하면 어떡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말은 확실한 증거를 가져오라는 뜻이었고, 실제로 염장의 집에서 이웃에 있는 온라인 슬롯암의 집을 감시한 것은 내인, 그러니까 왕건이 보낸 궁궐 사람이었다. 그는 온라인 슬롯암의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남편의 일이 잘못되면 나도 큰일 나겠구나라는 한탄을 듣고 이걸 역모의 증거로 삼았다. 보고를 받은 왕건은 이번에는 잽싸게 움직였다. 온라인 슬롯암을 즉시 체포하고 감옥에 가둔 다음 자백을 받아낸 것이다.


고려사에는 따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 과정에서 혹독한 고문이 동반했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반란이라고 보기에도 애매모호한 이 사건은 자백한 온라인 슬롯암이 끌려나와서 왕건에게 질책을 받고 저잣거리에서 목이 잘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6월 15일에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19일에 환선길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로 돌아간 지 열흘도 지나지 않은 28일의 일이다. 거기다 28일은 처형된 날이니까 아마 체포하고 심문한 다음 자백까지 받아내려고 했다면 며칠은 더 소요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환선길의 반란이 마무리된 직후, 온라인 슬롯암 역시 감시당하다가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환선길처럼 직접적으로 무력을 동원한 반란은 아니었고, 아내가 중얼거린 말을 핑계 삼아서 먼저 체포하고 자백을 받았다. 실제로 반란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었고, 오히려 거짓 역모나 누명을 씌운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환선길의 반란과 서원경 주민들의 불온한 움직임을 알고 있던 태조 왕건과 측근인 공신 세력들은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먼저 움직이기로 하고 가장 위협적인 온라인 슬롯암을 제거해버린 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만약 온라인 슬롯함이 정말 무능하고 재물에만 탐을 냈지만, 그의 죽음 이후 웅주 지역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후백제에 투항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환선길의 반란이 좀 더 위험했지만, 큰 여파 없이 마무리되었다면 온라인 슬롯암의 반란 같지 않은 반란은 크나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가 지키던 웅주 지역이 반발하면서 후백제로 투항하고 만다. 해당 지역을 장악한 후백제는 좀 더 공세적으로 고려와 신라를 공격하면서 한동안 후삼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정명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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