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 소재보다 ‘서사의 완성도’에 지갑 연 관객들
특정성 넘어 ‘보편성’ 획득한 동성애극에 열광
대학로를 강타한 동성애 소재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코인 슬롯와 소재의 파격적인 확장에 있다. 현대 사회의 차별을 다룬 리얼리즘 연극에 국한됐던 퀴어 공연은 이제 고대 이집트 신화, 근대 유럽 문학, 그리고 초현실적 판타지로 영역을 넓혔다. 이는 퀴어라는 코드가 단순한 ‘볼거리’나 ‘자극제’를 넘어, 인간 실존을 탐구하는 세련된 도구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뮤지컬 '하트셉수트' ⓒ글림컴퍼니
뮤지컬 ‘하트셉수트’는 이러한 코인 슬롯적 변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작품은 고대 이집트 최초 여성 파라오인 하트셉수트와 그녀의 무덤에서 발견된 미스터리한 미라에 작가적 상상력을 덧입혀 시작된다. 작품은 퀴어 서사가 단순히 사회적 금기나 아픔을 전시하는 차원을 넘어, 시대와 성별을 초월한 인간 본연의 구원 서사로 그 영역을 확장했음을 보여준다. 고대 이집트라는 웅장한 시공간을 빌려 퀴어 코드를 ‘현실의 벽’이 아닌 ‘운명적 서사’로 승화시킨 것이다.
‘랭보’나 ‘와일드 그레이’ 역시 마찬가지다. 이 작품들은 랭보와 베를렌느, 와일드와 더글라스의 동성애적 관계를 다루지만, 서사의 방점은 ‘치정’이 아닌 ‘예술혼’에 찍혀 코인 슬롯.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예술가의 관계는 사랑인 동시에 서로를 갉아먹고 완성하는 창작의 동력으로 묘사된다. 관객들은 이들을 ‘동성 커플’로 소비하기보다 ‘이해받지 못하는 천재들의 연대’로 받아들인다.
영국 문학의 거장 E.M. 포스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모리스’는 퀴어 서사가 비극의 굴레를 벗고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대다수 퀴어물이 사회적 억압에 굴복하거나 파멸하는 결말을 답습한 것과 달리, 이 작품은 20세기 초 영국의 견고한 계급 사회 속에서도 기득권을 버리고 하인 계급과의 사랑을 선택하는 주인공의 결단을 통해 ‘온전한 해피엔딩’을 제시한다. 동성애를 단순한 금기의 위반이 아닌, 사회적 신분제와 관습을 전복시키는 주체적인 혁명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관객들에게 ‘살아남아 사랑을 이루는’ 서사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코인 슬롯의 지평을 한 단계 넓혔다는 평을 받는다.
뮤지컬 '두 낫 디스터브' ⓒ모티브히어로
무겁고 진지한 시대극뿐만 아니라, 가벼운 터치의 현대물도 늘어나고 있다. 뮤지컬 ‘두 낫 디스터브’와 같은 작품은 호텔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소동극 형식을 빌려 동성 커플의 이야기를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로 풀어낸다. 이는 코인 슬롯 소재가 특별한 비극이 아닌,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연애담으로 소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코인 슬롯의 변주는 관객층의 확장을 가져왔다. 비극적 서사를 선호하는 정극 팬부터 가벼운 로맨스를 즐기는 대중 관객까지 흡수하며, 퀴어 공연은 ‘마니아들의 전유물’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웰메이드 창작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관객들은 이제 ‘소재’가 아닌 ‘서사의 질’과 ‘연출의 세련미’를 보고 티켓을 구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최근 동성애 극이 ‘코인 슬롯’라는 특정성을 넘어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한 공연 관계자는 “여전히 여성 배우보단, 남성 배우 두 명이 등장하는 극에 팬들이 열광하는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반응하지 않는다”면서 “관객들은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개연성 있게 그려지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가 나의 삶과 어떤 접점을 가지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제작사들 역시 1차원적 비극 서사를 탈피하고 ‘인간은 타인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사회적 자아와 본연의 자아 사이의 괴리는 무엇인가’와 같은 보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해 코인 슬롯라는 렌즈를 사용한다”고 분석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