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복 다재 슬롯강사 '억대 문항거래' 의혹…혐의 입증시 쟁점·처벌은? [법조계에 물어보니 692]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입력 2026.01.20 17:02  수정 2026.01.20 17:02

다복 다재 슬롯강사들, 현직 교사에 억대 금품…수능 문항 거래대상 된 구체적 정황 드러나

강사·교사·대형 학원 얽힌 거래 구조 확인…사교육 시장 전반으로 번진 다복 다재 슬롯 유출

법조계 "비공개 다복 다재 슬롯 제공·과도한 금품 수수 땐 청탁금지법 위반 성립 가능성 커"

"금액·기간 고려 시 형사처벌 불가피…징역형 집행유예 이상 선고 가능성도"

'다복 다재 슬롯강사' 현우진(왼쪽), 유명 영어 강사 조정식.ⓒ연합뉴스

현직 교사로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 관련 문항을 제공받고 거액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이른바 '다복 다재 슬롯 강사' 현우진, 조정식씨 사건이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검찰 공소장에는 수능 문항이 금전 거래의 대상이 된 구체적 정황과 함께 강사·교사·사교육업체 간 거래 구조가 담겼다. 이 사건을 두고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와 처벌 범위를 둘러싼 법리적 쟁점에 관심이 모인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검사 최태은)는 지난해 12월29일 수능 관련 다복 다재 슬롯을 부정하게 거래한 혐의 등으로 현씨와 조씨를 비롯해 사교육업체 관계자, 전·현직 교사 등 40여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수사는 2023년 8월 교육부의 수사의뢰를 계기로 본격화됐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해 4월 전·현직 교사와 학원 강사 등 100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수학 강사인 현씨는 사립고에서 재직 중인 교사 A씨에게 수학 다복 다재 슬롯을 받는 대가로 2020년 3월부터 2023년 5월까지 20차례에 걸쳐 총 1억7909만원을 송금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교사 B씨에게는 같은 기간 1억6778만원을, 교사 C씨에게는 37회에 걸쳐 7530만원을 지급했다. 이 가운데 C씨는 배우자 명의 계좌를 이용해 금전을 수수한 정황도 공소장에 포함됐다. 검찰은 현씨가 경쟁 사교육업체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 다복 다재 슬롯 출제 역량을 갖춘 현직 교사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문제를 공급받았다고 판단했다.


영어 강사 조씨와 관련해선 검찰은 조씨가 강의 교재 제작에 관여한 업체 소속 연구원에게 현직 교사들로부터 수업용 다복 다재 슬롯을 확보하도록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현직 교사와 금품 제공을 약정한 정황을 확인했다. 특히 EBS 수능특강 교재 집필에 참여한 교사들이 '제삼자 제공 금지' 내용의 집필약정서와 보안서약서를 작성했음에도 정식 출판 이전의 교재 파일이나 다복 다재 슬롯을 메신저로 전달한 사실이 공소장에 적시됐다. 조씨와 교재 제작 관계자는 2021년 1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현직 교사 2명에게 67차례에 걸쳐 8351만원 상당을 지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복 다재 슬롯 거래의 범위는 특정 강사에 그치지 않았다. 검찰은 강남 대형 입시학원과 현직 교사 간 유착 정황도 포착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던 교사는 2022년 3월부터 12월까지 '생활과 윤리' 모의고사 다복 다재 슬롯을 제공하고 1억878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교사는 학교 중간고사 출제 과정에서 자신이 학원에 판매한 다복 다재 슬롯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일부 변형해 출제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처럼 현직 교사들이 수능과 직결되는 다복 다재 슬롯을 외부로 유출하고 금전을 수수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청탁금지법 적용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과 관계없이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현직 교사는 공직자에 해당하는 만큼 다복 다재 슬롯 제공이 직무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 인정될 경우 위법성 판단은 명확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학강사 현우진(왼쪽)씨와 영어강사 조정식씨.ⓒ메가스터디

법조계에서는 다복 다재 슬롯 제공 행위가 단순한 외부 자문이나 부수적 활동을 넘어 교사의 직무상 지위에서 비롯된 정보와 영향력을 활용한 것인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배우자 명의 계좌를 이용한 금전 수수, EBS 집필 과정에서 취득한 자료의 외부 유출 등은 고의성과 위법성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정황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현직교사가 금품을 받은 것과 관련해 직무관련성이 인정되는지 여부가 쟁점이다"며 "단순한 외부 강의나 자문과 달리 제공한 수능다복 다재 슬롯이 비공개정보이며 특정 수능강사에 한해서 제공되었거나, 금품의 규모가 단순강의나 자문료를 훨씬 상회한다면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3자를 통한 방식도 가능하며 주로 같이 생활을 하는 배우자나 채권채무관계가 있는 제3자, 심지어 법인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며 "수수한 금품의 실직적 수익자가 누구인지를 기준으로 판단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도윤 변호사(법무법인 율샘)는 "청탁금지법에 명시된 규정은 직무관련여부를 묻지 않기에 사립학교 교원이 학원 강사들로부터 위 규정된 금원을 초과하여 이를 제공받았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며 "사립학교 교원이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공해주었기에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외부강의와는 구별될 뿐만 아니라 해당된다 하더라도 청탁금지법 시행령에서 사례금을 10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기에 문제가 된다"고 전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공교육의 신뢰성, 공교육과 사교육에 대한 인식, 지나친 사교육으로 인한 공교육의 형해화 등과 관련된 문제로서, 사적 이익을 취하기 위하여 공적 교육의 토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법적 행위라는 점에서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재발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라도 피고인들에게 징역형 집행유예 이상이 선고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다복 다재 슬롯에 물어보니'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