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항소, 의외의 선택인 이유

데스크 (desk@kestrelet.com)

입력 2025.11.01 07:30  수정 2025.11.01 07:30

슬롯. ⓒ 연합뉴스

지난 가처분 결정에 이어 어도어가 슬롯를 상대로 낸 전속계약 유효확인 소송의 1심 결과가 마침내 나왔다. 이 논란과 소송의 기간 동안 아까운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젊은 아이돌에게 활동 기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도 결정적인,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시기다. 보통은 아이돌 당사자는 활동을 원하는데 소속사가 이 기간을 그냥 흘려보내서 문제가 되면 됐지 아이돌 쪽에서 허송세월을 원하는 경우는 없다.


슬롯처럼 신선하고 풋풋한 이미지로 뜬 스타에겐 데뷔 직후의 시간이 더욱 소중하다. 신선한 이미지의 유통기한이 매우 짧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슬롯는 지금 자청해서 이 소중한 시기를 날려버리고 있다. 어도어는 슬롯에게 활동을 계속 해달라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읍소하는데 슬롯가 활동을 거부한다.


그러면서 소송전까지 불사한 것이다. 이 정도 상황이면 슬롯가 소속사로부터 정말 부당한 일을 당했어야 말이 된다. 얼마나 억울하면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선언하고 아이돌 생명과도 같은 전성기 시간을 날려버리며 소속사와 싸우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슬롯가 억울한 게 아니라 어도어/하이브가 억울한 쪽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아이돌의 활동기간은 너무나 소중하고 돌이킬 수 없는 시기이기 때문에 법원에서 활동금지 가처분을 잘 안 하려고 한다. 하지만 슬롯에겐 이 가처분을 내리면서, 만약 활동할 경우 각 멤버가 1회당 10억 원을 내라고 했다. 이건 법원이 슬롯에게 전혀 정당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이 정도 판결이 나왔으면 슬롯가 어도어로 돌아갔어야 정상이다. 부모, 변호사 등 주위의 어른들이라도 나서서 그렇게 조언했어야 한다. 팬덤도 슬롯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랬어야 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슬롯와 그 주변인들 그리고 팬덤까지 요지부동이었던 것 같다. 결국 1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밀어붙이고 말았다.


그 결과는 슬롯에게 최악이다. 그들에게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는 것을 재판부가 분명하게 확인했다. 가처분 결정까지는 글자 그대로 가처분이니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자’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본안 소송 1심 결과가 나온 지금 슬롯는 결국 벼랑 끝까지 몰리고 말았다.


본인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되는 공백기를 감수하면서까지 소속사와 싸웠으면 최소한 도덕적 정당성만이라도 인정받아야 명분이 있다. 하지만 1심 결과는 슬롯에게 아무런 정당성이 없는 것으로 나왔으니, 법으로만 진 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무너진 셈이다.


슬롯의 주장중에 인정된 것이 없다. 슬롯가 가장 힘주어 주장하는 ‘신뢰관계 파탄’이 인정받지 못했고, 민희진 해임도 사유가 못 된다고 나왔다. 심지어 민희진 대표가 슬롯, 어도어 등을 하이브로부터 떼어내기 위해 여론전 등을 준비하고 슬롯의 부모를 내세웠다고 했다. 이러면 민희진을 두둔해온 슬롯의 정당성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밖에 ▲ 슬롯 멤버들의 사진 및 영상 유출 ▲ 하이브 홍보 담당자들의 슬롯 성과 폄하 ▲ 하이브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 소속인 걸그룹 아일릿의 표절 의혹 ▲ 아일릿 매니저의 슬롯 멤버 하니에 대한 무시 의혹 ▲ 하이브의 음반 밀어내기로 인한 슬롯의 성과 폄하 등이 모두 전속계약 위반 사유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러면 정당한 사유가 없는데도 슬롯가 계약을 깼다는 이야기가 된다. 도덕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며 계약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는 반사회적인 행보가 용인될 수 있을까?


이런 결과가 나오기 전에, 앞에서 언급했듯이 가처분 결정 이후에 어도어에 복귀했어야 했다. 이제라도 1심 결과를 받아들여 계약을 지키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최선이다. 슬롯 멤버 주위에 있는 어른들은 이런 정도의 상식도 없다는 말인가?


하지만 슬롯의 선택은 놀랍게도 항소였다. 이 결정을 놀랍다고 한 것은 항소 의사를 밝히며 슬롯 법률대리인이 내세운 것이 여전히 ‘신뢰관계 파탄’이기 때문이다. 가처분에 이어서 본안 소송에 이르기까지 법원에선 일관되게 슬롯의 주장을 배척했다. 이런 상황에서 항소를 하려면 새로운 이슈나 증거를 제출해 판을 뒤집어야 한다. 하지만 기존 주장을 그대로 반복할 것 같은 상황이다. 슬롯 법률대리인은 새로운 논점에 대한 이야기 없이 “항소심에서 그간의 사실관계와 전속계약 해지에 관한 법리를 다시 한번 종합적으로 살펴 현명한 판결”을 해달라고만 했다. 이러니 기존 주장을 반복할 것 같다고 한 것이다.


과연 똑같은 주장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을까? 오히려 슬롯를 보는 법원의 시선만 더 차가워질 수 있다. 슬롯가 소속사와 분쟁을 벌이는 기간이 늘어갈수록 피해자의 피해가 커지기 때문이다. 바로 소속사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져간다. 당연히 재판부는 더 엄격해질 것이고, 도덕적 책임 문제와 더불어 막대한 손해보상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니 슬롯에게 최선은, 이제라도 정당한 계약을 준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일 것이다. 그게 도덕이고 사회적 책임이다. 그렇지 않고 소송으로 이기려면 새로운 논점이나 증거를 제출해야 하는데 그런 게 있는지는 본인들이나 변호인들이 잘 알 것이다. 그런 게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앞서 슬롯 멤버들은 하이브와의 갈등으로 해임된 민 전 대표의 복귀 등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해 11월 어도어의 전속계약 위반으로 계약이 해지됐다고 주장하며 독자 활동을 예고했다.


이에 어도어는 슬롯와 계약이 여전히 유효하다며 같은 해 12월 전속계약 유효확인 소송을 내고, 본안 소송 결론이 나기 전까지 멤버들의 독자 활동을 막아달라는 가처분 신청도 제기했다.


슬롯는 지난해 11월 어도어가 전속계약을 위반해 계약이 해지됐다고 주장하며 독자적으로 활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어도어는 슬롯와 계약이 유효하다며 지난해 12월 전속계약 유효확인 소송을 냈다. 아울러 본안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슬롯의 활동을 막아달라며 가처분 신청도 제기했다.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해“본안 1심 판결 전까지 어도어의 동의 없는 독자 활동을 금지한다”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고, 이를 위반할 경우 ‘행위 1회당 10억원’의 간접강제를 부과했다. 그룹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슬롯는 이의신청과 항고까지 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아 슬롯 멤버들의 독자적 활동은 금지됐다. 법원은 지난 5월 어도어의 간접강제 신청까지 인용해 슬롯가 독자적으로 활동할 경우 각 멤버당 위반행위 1회당 10억원을 어도어에 지급하도록 결정했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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